자녀의 진로를 이야기할 때 부모가 가장 듣고 싶은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직업 몇 개를 알려달라는 것이다. 의사인지, 개발자인지, 연구자인지, 아니면 아직 이름조차 없는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 관련 직업인지 알고 싶다.
문제는 그 질문에 자신 있게 답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는 데 있다. AI가 영향을 주는 단위가 직업 전체가 아니라 그 직업을 구성하는 개별 업무로 내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직업 이름은 그대로 남아도 신입사원이 처음 맡던 조사, 문서 작성, 코딩, 분석, 자료 정리 같은 업무는 먼저 바뀔 수 있다.
그래서 2026년 9월 출간된 경제학자 대니얼 서스킨드(Daniel Susskind)의 What Should My Children Do? How to Flourish in the Age of AI가 던지는 질문은 책 제목보다 조금 더 무겁다. 아이에게 어떤 직업을 권해야 하느냐는 질문 뒤에는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진로 지도가 얼마나 오래 유효할까”라는 불안이 숨어 있다.
WHAT CHANGED
- AI가 반복 업무뿐 아니라 분석·코딩·문서 작성처럼 젊은 지식근로자가 경험을 쌓던 업무에도 들어오기 시작했다.
- 한국 청년고용에서도 AI 노출도가 높은 산업의 취업 감소가 두드러지는 신호가 확인됐다.
- 따라서 진로 판단의 기준도 ‘어떤 직업이 살아남는가’에서 ‘어떤 방식으로 능력과 경험을 축적할 것인가’로 넓힐 필요가 생겼다.
왜 지금 부모의 진로 고민이 더 어려워졌을까
한국은행이 2026년 9월 3일 공개한 청년고용 분석은 이 불안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2022년 6월부터 2026년 6월까지 청년 취업자는 28만5천 명 감소했고, 이 가운데 26만8천 명이 AI 노출도가 높은 산업에서 줄었다. 감소 폭은 정보서비스, 출판, 컴퓨터 프로그래밍, 전문서비스 등에서 특히 컸다.
이 숫자를 곧바로 “AI가 청년 일자리를 28만 개 없앴다”라고 읽어서는 안 된다. 한국은행도 인과관계를 그렇게 단정하지 않았다. 코로나 시기 과잉채용의 조정, 경력직 선호, 사내 교육 감소와 같은 변화가 함께 작용했을 수 있다.
그래도 학부모가 눈여겨볼 신호는 있다. AI의 영향이 큰 산업에서 젊은 사람이 일을 시작하고 경험을 쌓는 과정이 이전과 달라질 가능성이다. 한국은행 자료에서도 대졸 이상 청년의 실업률은 2022년 11월 이후 평균 7.0%로, 그보다 낮은 학력 집단의 5.4%보다 높게 나타났다.
NOTE
AI 시대의 진로 문제를 ‘어떤 직업이 사라지는가’로만 보면 중요한 부분을 놓친다. 더 먼저 볼 것은 젊은 사람이 초급 업무를 맡고, 실수하고, 피드백을 받으며 전문가가 되는 경로가 어떻게 달라지고 있느냐다.
서스킨드가 ‘AI에 안전한 직업’을 추천하지 않는 이유
서스킨드는 미래를 대비한다며 특정 직업을 골라놓는 방식 자체를 경계한다. 몇 년 전만 해도 코딩은 미래를 대비하는 대표적인 기술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생성형 AI가 가장 빠르게 파고드는 업무 중 하나가 됐다. 현재 자동화하기 어려워 보이는 능력도 아이가 실제 노동시장에 들어갈 때까지 그대로 유지된다는 보장은 없다.
그렇다고 진로 준비를 포기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확실하지 않은 미래일수록 특정 직업에 모든 준비를 걸기보다, 다양한 환경에서 다시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쌓아야 한다는 주장에 가깝다.
책에서 반복되는 첫 번째 기준은 의외로 새로운 기술이 아니다. 읽기와 수학 같은 기초능력이다. AI가 요약하고 계산해주는 시대에도 기초능력이 필요한 이유는 AI의 결과가 맞는지 판단하고, 더 복잡한 문제를 이해하기 위한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AI 사용 능력도 필요하다. 다만 여기에는 조건이 붙는다. AI를 사용할 수 있는 능력과 AI 없이도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함께 길러야 한다. 서스킨드는 계산기가 교육에 들어왔을 때처럼 AI를 사용한 학습과 사용하지 않은 학습을 함께 가르치고 평가하는 방식을 제안한다.
직업이 아니라 ‘어떤 문제를 풀고 싶은지’를 보라는 조언
이 책에서 부모가 특히 생각해볼 대목은 직업과 문제를 구분하는 부분이다. 의사의 업무는 달라질 수 있지만 건강을 개선해야 한다는 문제는 사라지지 않는다. 변호사의 작업 방식이 달라져도 법적 분쟁을 해결하고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는 수요는 남는다. 마케팅 업무가 자동화되더라도 고객에게 제품의 가치를 알리고 판매해야 하는 문제도 계속 존재한다.
직업 이름을 중심으로 진로를 고르면 그 직업의 현재 모습에 아이를 맞추게 된다. 반대로 문제를 중심으로 선택하면 기술이 바뀌어도 해결 방식 자체를 다시 배울 여지가 생긴다.
예를 들어 아이가 생명과 건강이라는 문제에 관심이 있다면 의사라는 하나의 직업만 볼 필요는 없다. 의학, 생명과학, 데이터, 의료기기, AI 신약개발, 공중보건처럼 여러 경로가 존재한다. 에너지나 기후, 교육, 도시, 안전, 콘텐츠, 소비자 문제도 마찬가지다.
서스킨드가 자신이 다시 진로를 선택한다면 AI와 과학 쪽으로 향하겠다고 말하는 이유도 그 분야가 자동화에서 안전해서가 아니다. 앞으로 새로운 문제와 발견이 많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영역이기 때문이다.
AI를 잘 쓰게 하는 것과 AI에 의존하게 하는 것은 다르다
부모가 부딪히는 다음 질문은 더 현실적이다. 숙제를 할 때 ChatGPT를 쓰게 해야 할까. 글쓰기나 코딩을 AI에게 맡겨도 될까. AI 튜터를 사용하는 것이 학습에 도움이 될까.
경제협력개발기구(Organis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 OECD)와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uropean Commission)가 2026년 6월 발표한 초·중등 AI 리터러시(Artificial Intelligence Literacy) 프레임워크도 단순한 도구 사용법을 목표로 두지 않는다. AI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고, 결과를 비판적으로 평가하며, 윤리적이고 창의적으로 활용하는 지식·기술·태도를 함께 강조한다.
이 차이가 중요하다. 프롬프트를 잘 작성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답을 검증할 지식이 있어야 하고, 언제 AI를 쓰지 않아야 하는지도 판단해야 한다. 결과를 그대로 복사하는 학생과 AI를 이용해 더 어려운 문제를 탐색하는 학생은 같은 도구를 쓰지만 학습 과정은 전혀 다르다.
따라서 부모가 AI 사용 시간을 몇 분으로 제한할지보다 먼저 볼 질문은 “아이에게 이 도구가 무엇을 대신하고 있는가”일 수 있다. 생각하는 과정을 대신한다면 주의가 필요하다. 반대로 설명을 다시 듣고, 다른 방법을 시험하고, 자신이 만든 아이디어를 구현하는 데 이용한다면 교육적 역할이 달라진다.
부모가 아이의 진로에서 먼저 확인할 다섯 가지
그렇다면 어떤 직업을 권해야 할까. 특정 직업 목록보다 다음 다섯 질문을 먼저 던지는 편이 낫다. AgencyTimes는 책의 문제 중심 관점과 최근 청년고용 신호를 부모의 진로 판단 기준으로 다시 정리했다.
PARENT CAREER CHECK
1. 이 직업이 아니라, 이 직업이 해결하는 문제는 오래 남는가?
직업명보다 건강, 교육, 에너지, 안전, 이동, 소통처럼 사회가 계속 해결해야 하는 문제를 먼저 본다.
2. AI의 답을 검증할 기초능력이 있는가?
읽기, 쓰기, 수학, 논리와 같은 기초능력은 AI가 대신해도 필요하다. 결과가 틀렸을 때 알아차릴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3. AI를 사용해서도, 사용하지 않고도 문제를 풀어보는가?
도구 활용과 독립 사고를 경쟁 관계로 만들 필요는 없다. 두 방식 모두 경험하게 하는 편이 변화에 강하다.
4. 실제 문제를 해결해본 경험이 있는가?
시험 성적과 자격증만으로는 확인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프로젝트, 실험, 동아리, 제작, 발표, 봉사처럼 결과와 피드백이 있는 경험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5. 초년 업무가 자동화돼도 숙련을 쌓을 경로가 있는가?
앞으로 중요한 질문이다. 조사와 자료정리처럼 과거 신입이 맡던 업무를 AI가 대신한다면, 아이가 전문가에게 필요한 판단과 경험을 어디에서 배울지까지 봐야 한다.
그렇다면 지금 어떤 방향을 권할 수 있을까
미래에 안전한 직업 목록을 만드는 것은 어렵지만 탐색할 방향은 있다. AI와 과학처럼 새로운 도구와 발견이 집중되는 영역, 건강·교육·에너지처럼 오래 남을 문제를 다루는 영역, 물리적 환경에서 판단과 책임이 필요한 분야, 그리고 기존 전문성을 AI와 결합해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영역이다.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 WEF)의 2025년 고용 보고서에서도 AI·빅데이터와 기술 문해력이 빠르게 중요해지는 동시에 창의적 사고, 회복탄력성, 유연성, 호기심과 평생학습 같은 능력이 함께 상승할 것으로 기업들이 예상했다. 기술능력과 인간능력 가운데 하나를 고르는 구조가 아니라는 뜻이다.
다만 이런 전망도 아이의 직업을 결정해주는 답안지는 아니다. WEF 수치 역시 기업을 대상으로 한 전망이다. 현재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이 노동시장에 들어갈 때까지 기술과 산업 구조는 여러 번 더 바뀔 수 있다.
그래서 부모에게 필요한 태도는 더 많은 예측이 아니라 선택권을 넓혀주는 준비에 가깝다. 읽고 계산하고 질문하는 힘을 유지하면서 AI를 능숙하게 사용하고, 관심 있는 문제를 직접 해결해보도록 하는 것이다.
다음에 볼 지표
앞으로 봐야 할 것은 ‘AI가 몇 개의 직업을 없앴는가’만이 아니다. 기업이 신입에게 어떤 업무를 맡기는지, 초급 인력이 경험을 쌓던 일이 어떻게 재설계되는지, 학교가 AI를 활용한 평가와 AI 없이 수행하는 평가를 어떻게 병행하는지가 더 중요한 신호가 될 수 있다.
AI 시대에 부모가 찾기 어려워진 것은 유망 직업이 아니라 확실한 진로 지도다. 특정 직업을 미래에 안전하다고 단정하기보다 기초능력, AI 활용과 검증, 독립 사고, 실제 문제 해결 경험, 숙련을 쌓을 경로를 함께 보는 편이 현실적이다. 아이에게 물어야 할 질문도 “무슨 직업을 가질래?”에서 “어떤 문제를 오래 해결해보고 싶니?”로 조금씩 바뀔 필요가 있다.
FAQ
AI 시대 자녀 진로에 대해 자주 묻는 질문
Q. AI 시대에 가장 안전한 직업은 무엇인가요?
현재로서는 특정 직업을 장기적으로 안전하다고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AI는 직업 전체보다 직업 안의 개별 업무를 빠르게 바꾸고 있기 때문에, 직업명과 함께 그 분야가 해결하는 문제와 AI 이후의 업무 구조를 살펴보는 편이 좋습니다.
Q. 그렇다면 아이에게 코딩을 배우게 할 필요가 없나요?
그렇게 볼 필요는 없습니다. 코딩 자체가 평생 안전한 직업을 보장하지는 않지만 컴퓨터가 문제를 처리하는 방식, 논리, 자동화 구조를 이해하는 경험은 여전히 가치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특정 프로그래밍 언어 하나보다 기술을 이용해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입니다.
Q. 아이가 공부할 때 생성형 AI를 쓰게 해도 될까요?
사용 여부보다 무엇을 맡기는지가 중요합니다. 답을 대신 만드는 용도에만 의존하면 학습 과정이 줄어들 수 있지만, 설명을 다시 듣거나 질문을 확장하고 아이디어를 시험하는 도구로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AI를 쓰는 학습과 쓰지 않는 학습을 함께 경험하게 하는 방법을 검토할 수 있습니다.
Q. AI 때문에 실제로 한국 청년 일자리가 줄고 있나요?
AI 노출도가 높은 산업에서 청년 취업 감소가 집중된 현상은 확인되고 있습니다. 다만 한국은행과 한국고용정보원 모두 AI 하나만으로 최근 청년고용 감소를 설명하기 어렵다고 보고 있습니다. 경력직 선호, 인구 변화, 기업의 채용·교육 방식 변화 등을 함께 봐야 합니다.
TERMINOLOGY
본문에서 사용한 주요 용어
| 용어 | 뜻 | 부모가 볼 지점 |
|---|---|---|
| AI |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 특정 앱 사용법보다 AI가 어떤 업무를 맡고 사람이 무엇을 검증해야 하는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
| AGI | 범용인공지능(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 | 도달 시점과 형태는 불확실하다. 자녀의 진로를 특정 AGI 전망 하나에 맞춰 결정하는 것은 주의할 필요가 있다. |
| AI 리터러시 | AI를 이해하고 결과를 평가하며 책임 있게 활용하는 지식·기술·태도 | 프롬프트 기술만이 아니라 오류 검증, 윤리, 창의적 활용을 함께 봐야 한다. |
| 숙련 사다리 | 초급 업무부터 경험을 쌓으며 점차 복잡한 판단을 배우는 경로 | AI가 초급 업무를 자동화할 때 젊은 인력이 어디에서 경험을 쌓을지가 중요한 노동시장 문제다. |
References
- [1] Penguin | What Should My Children Do? — Daniel Susskind
- [2] Bank of Korea | Who Moved the Career Ladder? AI and Youth Employment in Korea
- [3] 고용노동부·한국고용정보원 | AI와 노동시장 분석
- [4] OECD · European Commission | Empowering Learners for the Age of AI
- [5] World Economic Forum | The Future of Jobs Report 2025
- [6] The Guardian | Daniel Susskind on parenting and education in the age of AI
- [7] The Guardian | What Should My Children Do? 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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